‘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대종상 9관왕…
[슈퍼액션 = 이초희 기자] 영화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으로 한국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원로 영화인 정진우 감독이 별세했다. 향년 88세.
한국영화감독협회는 9일 “명예 이사장 정진우 감독께서 전날 오후 8시 별세하셨다”고 밝혔다. 고인은 서울 강남구의 한 요양병원에서 투병 중 숨을 거뒀다. 유족에 따르면 두 달여 전 반려견을 산책하던 중 낙상 사고를 당해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코로나19에 감염됐고, 이후 건강을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1938년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난 정 감독은 농업고등학교에서 축산을 공부하던 중 학생 연극 활동을 계기로 진로를 바꿨다. 중앙대학교 연극부에서 활동하며 예술의 길에 들어섰고, 1958년 대학 재학 중 충무로에서 촬영기사 조수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그는 1962년 최무룡·김지미 주연의 영화 ‘외아들’로 불과 24세의 나이에 감독 데뷔하며 당대 최연소 감독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배신’(1963), ‘초우’(1966), ‘석화촌’, ‘섬개구리 만세’, ‘자녀목’ 등 굵직한 작품을 연출하며 한국영화의 저력을 쌓아 올렸다.
대표작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1980)는 제19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남우주연상, 촬영상 등 9관왕을 차지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이듬해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역시 대종상 6관왕에 오르며 정 감독의 연출력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연출뿐 아니라 제작자로서도 한국영화사에 깊은 족적을 남겼다. 김기영 감독의 ‘화녀’, 임권택 감독의 ‘아벤고 공수군단’ 등을 제작하며 영화인 간의 협업과 산업적 기반을 확장했다.
정 감독은 한국영화의 제도적 토대를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1967년 한국영화감독협회 창립을 주도했고, 1984년 한국영화복지재단을 설립해 영화인 복지 향상에 힘썼다. 또한 영화진흥공사(현 영화진흥위원회)와 한국필름보관소(현 한국영상자료원) 설립에 관여하며 한국영화 진흥의 초석을 다졌다.
해외 영화제와의 교류에도 적극 나서며 한국영화의 세계화를 이끌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3년 칸영화제에서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공로훈장을 수훈했다.
한국영화인협회는 “정진우 감독의 영화 사랑은 수많은 작품을 통해 시대와 세대를 넘어 깊은 울림과 위로를 전해주었다”며 “영화인들은 비보에 깊은 슬픔을 느끼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애도의 뜻을 전했다.
고인의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장례는 한국영화인협회·한국영화감독협회·한국영화인원로회·한국영화인복지재단 공동 주관의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임권택 감독과 이장호 감독, 이해룡 원로회 회장이 명예장례위원장을 맡았다.
유족으로는 아내와 아들, 두 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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